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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일기24

[사이의 시간들 2] 처음, 울음이 터진 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마자 인공호흡기를 달았다.그곳에 적응하느라 일주일 정도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그저 빨리 호전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인공호흡기를 언제 뗄 수 있을지,몸이 언제 움직일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매일 천장만 바라보며엄마가 오는 면회 시간만 기다렸다.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오늘 날씨는 어떤지—그저 바깥이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날, 간호사에게 라디오를 부탁했다.기계음만 가득하던 공간에, 라디오가 처음 흘러나왔을 때효리 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나를 무너뜨렸다. 노래가 흐르는 순간, 눈물이 났다.아무런 예고도 없이,억울하다는 감정이 밀려왔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겨우 숨 쉬고 있는 내 몸,움직일 수조차 없는 이 현실,그저 침대에 눕.. 2025. 5. 24.
[회복일기④] 길랑바레 증후군 중환자실 둘째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중환자실 입실, 침대 위의 나간호사들이 나를 중환자실 침대로 옮겼다.병원복을 갈아입히고, 손목에는 환자 팔찌를 채웠다.손등에는 주사 바늘이 꽂혔고, 나는 이제 완전히 누워 있는 환자가 되었다. 뇌척수액 검사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척수액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루 동안은 바른 자세로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다.혹여나 잘못될까 봐, 등을 침대에 꼭 붙인 채 "네" 하고 조용히 대답했다. 움직일 수 없던 밤첫날밤은 말 그대로 괴로움 그 자체였다.이제는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겨웠고, 침대에서 등을 뗄 수도 없었다. 목은 전날보다 훨씬 아팠고,아무리 끙끙 앓아도 고통은 잦아들지 않았다.결국 새벽 늦게야 겨우 잠들었다.그마저도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아침을 맞았다. 면회시간을 기다리며아침, 간호사에게 면회 시간을 물었다.. 2025. 5. 21.
[회복일기③] 대학병원에서 ‘길랑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다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권유다음날 아침, 몸은 더 나빠졌다.발음은 혀 끝만 움직이는 수준이었고, 목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었다. 전날 저녁부터 동생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신경과가 있는 병원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우리는 이미 전원을 요청해둔 상태였는데,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 답답함만 커졌다.그때 담당 선생님이 병실에 들어오셨다.“너무 젊으셔서 안타까워서 보내드릴게요. 대학병원에 연락해 뒀으니 그쪽으로 가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엄마와 나는 그 말에 바로 알겠다고 답했고, 곧바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세븐틴 노래와 함께한 이동서류를 챙겨 동생 차에 올랐다.창밖은 너무나 맑았다.뜨거운 여름 햇살이 쏟아지던 날이었지만, 내 눈엔 평화롭고 조용하게만 보였다. ‘무슨 병이지? 괜찮은 걸까?.. 2025. 5. 18.
[사이의 시간들 1] 그날, 끝에서 바라본 것들 병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무방비한 채로 맞이한 그 순간, 나는 그대로 무너졌다. 또렷한 정신으로 한 달 반을 버틴 중환자실.그곳은 내 감정과 생각을 바닥 깊은 곳까지 끌어내리는 장소였다. 처음 누군가의 죽어가는 소리를 들은 날,‘여기가 나의 끝일까’ 하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고처음 누군가의 관이 나가는 모습을 봤을 땐그분의 평안을 빌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다 어느 날,내 숨이 멈춰져 가는 걸 스스로 느낀 순간이 있었다.의식이 흐릿해지고, 끝까지 숨 쉬려 애쓰다너무 힘들어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질 무렵—눈앞에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아직 해보지 못한 일들,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그리워만 했던 풍경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억울했다.이대로 끝이라는 게, 정말 억울했다. 그때의 감각은 지금도 또렷하.. 2025. 5. 17.
[회복일기②] MRI 3번, 병명은 없었다 - 종합병원에서의 밤 첫 번째 병원, 첫 번째 검사 다행히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몸이 너무 처져 혼자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다.간호사 두 분이 다가와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셨다. │ 그제야 병원에 도착했다는 현실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 곧바로 뇌 CT 검사를 받았다.AI 판독 결과 뇌경색이 의심되는 부위가 하나 보였지만, 정확한 진단은 아니라는 말뿐. “담당 선생님이 오면 다시 설명드릴게요.” 그 말을 남긴 채,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오랜 대기 끝에 신경과 선생님이 왔다. 상태를 확인하더니 MRI를 찍자고 했다. 검사와 기다림은 반복됐고,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입원, 그리고 침묵 마침 동생이 같은 지역에 살아 엄마보다 먼저 도착했다. 입원 절차를 도와주고 이런저.. 2025. 5. 14.
[회복일기①]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 길랑바레증후군의 조용한 시작 길랑바레 증후군 초기 증상, 감각 이상과 힘 빠짐으로 시작된 이상한 변화.처음 구급차를 타기까지의 기록.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몸은 조금씩 말을 듣지 않았고결국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그날의 기록을 남긴다. 손끝에서 시작된 이상한 감각 시작은 장염이었다.위장 장애는 자주 있었지만 이번엔 유독 심했다.며칠 지나 증상이 가라앉을 무렵, 손끝 감각이 이상했다.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땐 단순히 운동을 무리한 탓이라 여겼다. 장염이 끝나갈 무렵, 차가운 물건을 만지면 그 부위가 빨개지며 저리고 아팠다.아이스 아메리카노, 차가운 음료, 냉동실 물건을 잡으면 피부는 순식간에 빨개졌고 심한 저림과 감각 이상이 동반했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병원에 가볼 생각은 못했.. 2025.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