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시간들 6] 처음, 웃음이 터진 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중환자실의 생활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면회시간을 기다리고, 간호사가 틈이 날 시간을 기다리고,포지션 선생님이 와서 몸을 돌려줄 시간을 기다리고,밤이 와서 수면 주사를 맞기를 기다리고,호흡이 돌아오길, 몸이 돌아오길,중환자실에서 나갈 수 있기를 인내하며그저 하루하루를 버텼다. 라디오도 지겨워질 즈음,평소 좋아하던 노래들이 너무 듣고 싶어졌다.엄마에게 부탁해 동생에게 전해달라고 했다.CD플레이어와, 세븐틴 노래를 잔뜩 담은 USB를. 이틀 뒤,비싸 보이는 CD플레이어와 함께엄마는 동생이 보낸 USB를 중환자실에 넣어주고 갔다.동생의 취향이 반영된 아이유 노래와내가 부탁한 세븐틴 노래가 가득한 USB였다. 이브닝 간호사가 노래를 틀어줬고,그 순간 흘러나온 첫 곡은 세븐틴의 ‘Shin..
2025. 6. 21.
[사이의 시간들 3] 말할 수 없던 밤, 잊혀지지 않는 말
그날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인공호흡기 자발호흡 훈련 중이었고, 호흡은 여전히 버거웠다.몸의 각도 하나, 가래의 양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기, 나는 그날도 조심스럽게 간호사가 바쁘지 않기를 기다려 석션을 요청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세가 더 불편해졌고,숨쉬는 것이 고통이 되었다. 결국 나는 침대 난간을 다리로 쳐서 간신히 도움을 요청했다.그렇게 간호사가 다가왔고,그때 들은 말은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박혀 있다. “자야 되는데, 말을 해야 알죠. 말을.” 숨을 쉴 수 없어 불렀고,말할 수 없어 다른 방법을 찾은 밤이었다.그 말은 너무 쉽게 나를 무너뜨렸다.그날 밤 이후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많은 시간이 흘렀지만,이상하리만큼 그 한 마디는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억울..
2025. 5. 31.
[사이의 시간들 2] 처음, 울음이 터진 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마자 인공호흡기를 달았다.그곳에 적응하느라 일주일 정도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그저 빨리 호전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인공호흡기를 언제 뗄 수 있을지,몸이 언제 움직일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매일 천장만 바라보며엄마가 오는 면회 시간만 기다렸다.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오늘 날씨는 어떤지—그저 바깥이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날, 간호사에게 라디오를 부탁했다.기계음만 가득하던 공간에, 라디오가 처음 흘러나왔을 때효리 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나를 무너뜨렸다. 노래가 흐르는 순간, 눈물이 났다.아무런 예고도 없이,억울하다는 감정이 밀려왔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겨우 숨 쉬고 있는 내 몸,움직일 수조차 없는 이 현실,그저 침대에 눕..
2025. 5. 24.